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체스터 니미츠 (문단 편집) === 종전 이후 === 2차 대전 이후 미 [[육군 항공대]]에서 [[공군]]으로 바뀐 [[미 공군]]과 미 해군의 싸움[* 다음 전쟁 때 각자의 전략적 역할을 정하기 위한 싸움+그를 위한 예산 다툼.]이 슬슬 시작할 때 니미츠의 해군참모총장 퇴임 연설은 해군에 힘을 실어 줬고[* 하지만 공군의 홍보가 워낙 뛰어나서 뒤에 이 힘을 상당수 까먹는다.] 후에 있었던 '''[[제독들의 반란]]''' 사건에 도움을 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. 말년에는 폐렴으로 인한 뇌졸중을 앓았고, 1966년 2월 20일 [[샌프란시스코]] 예바 부아나 섬에 있는 자택[* 지금도 Nimitz House라고 보존되어 있다.] 에서 병사했다. 장례식은 인접한 트래저 아일랜드(Treasure Island)의 예배당에서 치루었고, 산 브루노의 골든 게이트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. 니미츠 자신은 불필요한 정치적 논쟁[* 전후 작전 상의 문제 및 지휘권 다툼으로 많은 장군들과 제독들이 논쟁을 불러 일으킨 경우가 많았다. 이들은 각자의 회고록에서 자신의 주장을 다시 강조함으로서 논쟁을 야기시켰는데, 대표적인 경우가 [[사이판]]에서 지지부진한 진격으로 해병대사령관에게 해임당한 '''육군''' 장성 스미스 소장 등이 있다. 물론 그 육군 장군 스미스를 해임한 '''해병''' 장군 스미스 중장도 회고록을 내서 자신이 육군의 모든 분노를 떠안도록 니미츠 제독의 해군에게 버림받았다고 주장했다. 홀시 역시 회고록을 남기지 못했지만 레이테에서의 지휘로 전후 새뮤얼 모리슨이 주도해 작성한 미 해군 공간사에서 혹독한 비판을 받는 곤욕을 치룬다.] 때문에 구술사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회고록을 남기지 않았다. 부하들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담긴 편지도 전부 '''부인이 소각해 버렸다'''. 니미츠 사후 미 해군사관학교 교수인 포터가 쓴 전기가 니미츠에 대한 고전이 되었다. 한국에도 2권으로 번역이 되었고 나중에 양장 합본이 나왔다.[* 역자 서문에서 지적하듯이 허만 우크의 Winds of War가 이 전기를 대단히 많이 참조했다.] 그러나 지금 그의 이름은 미국의 힘을 상징하는 [[니미츠급 항공모함]]에 붙여졌으니 그 노고는 충분히 보상받은 셈일까. [[항공모함]] 함대를 앞세워서 승리를 일궈낸 사람을 기리는데 이보다 더 알맞은 무기는 없으리라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